넷제로(Net Zero), 탄소중립은 허상일까 현실일까?
지구 평균기온 상승을 1.5도 이하로 제한하기 위해 전 세계는 지금 ‘넷제로(Net Zero)’, 즉 탄소중립이라는 목표를 향해 달리고 있습니다. 2050년까지 온실가스 순배출량을 0으로 만들겠다는 선언은 이제 국가와 기업, 도시와 시민 사회의 공통된 비전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이 ‘탄소중립’이라는 개념에 회의적인 시선도 커지고 있습니다. 과연 지금 우리가 추진하고 있는 넷제로 전략은 실현 가능한 것일까요? 아니면 책임 회피와 지연의 전략, 말뿐인 선언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요?
탄소중립은 단순한 슬로건이 아닌, 인류 생존을 위한 마지막 대책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현실적인 대안이 되기 위해서는 목표를 향한 정직한 점검과 구체적인 실행 전략이 필요합니다.
탄소중립이란 무엇인가 – 순배출 0의 의미
‘탄소중립(Net Zero)’이란 한 국가나 조직, 혹은 개인이 배출하는 온실가스의 총량에서, 흡수하거나 제거하는 양을 더해 실질적인 순배출량을 0으로 만드는 것을 의미합니다. 온실가스를 전혀 배출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배출한 만큼 상쇄(offset)하거나 제거(removal)해서 기후에 영향을 주지 않도록 균형을 맞추는 개념입니다.
예를 들어 전기를 생산하거나 자동차를 운행하면서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만, 동시에 이를 흡수할 수 있는 나무를 심거나, 탄소 포집 기술(CCS)을 통해 대기 중의 CO₂를 제거하면 전체적으로는 0에 수렴할 수 있다는 원리입니다.
탄소중립의 목표는 전 세계가 합의한 기후위기 대응의 최종 경로입니다. 유럽연합, 미국, 한국을 비롯한 140개 이상 국가가 2050년을 기준으로 넷제로를 선언했고, 중국과 인도도 각각 2060년, 2070년까지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기업과 도시, 대학, 금융기관 등도 잇따라 ‘넷제로 연합’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선언이 아니라, 그 이행의 내용과 방식에 있습니다. “정말로 가능한가?”라는 질문은 갈수록 현실적인 고민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탄소중립의 허상 – 말뿐인 목표와 탄소상쇄의 함정
탄소중립의 개념은 명확해 보이지만, 현실은 훨씬 복잡합니다. 무엇보다 많은 국가와 기업들이 온실가스를 감축하는 대신 ‘상쇄(offset)’ 방식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판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기업이 자사 공장에서 탄소를 감축하지 않은 채, 해외에 나무를 심거나 탄소배출권을 구매하여 "우리는 넷제로 달성 중"이라고 주장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탄소상쇄는 실질적인 감축을 대신할 수 없으며, 과잉 측정 또는 이중계산 등의 문제로 인해 온실가스 감축의 신뢰성을 떨어뜨릴 수 있습니다.
또한 일부 국가의 탄소중립 전략은 주요 산업(예: 석유화학, 시멘트, 항공 등) 부문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미래 기술(탄소포집, 수소연료, 인공 광합성 등)에 대한 기대에 기반해 탄소중립을 ‘미루는’ 방식으로 설정되어 있습니다. 이는 실제 감축보다 ‘책임의 전가’ 혹은 ‘기술 낙관론’에 의존한 회피 전략일 수 있습니다.
유엔 환경계획(UNEP)은 매년 발표하는 보고서에서 “현재의 탄소중립 선언들이 실질적인 행동으로 전환되지 않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말뿐인 넷제로 선언은 오히려 기후위기 대응을 지연시키는 도구가 될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실현 가능한 탄소중립 – 정직한 목표와 전환의 용기
그렇다면 탄소중립은 허상에 불과한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탄소중립은 여전히 현실 가능한 대안입니다. 다만 그것이 공허한 약속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몇 가지 전제 조건이 필요합니다.
첫째, 실질적 감축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상쇄보다 감축이 먼저라는 원칙 아래, 에너지 전환(재생에너지 확대), 수송 부문 탈탄소화(전기차, 대중교통 확대), 산업 공정의 전환 등 배출 자체를 줄이는 구조 개혁이 전면적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둘째, 단기 목표 설정과 투명한 이행 점검이 중요합니다. 2050년은 너무 먼 미래입니다. 따라서 각국은 2030년까지의 중간 목표(NDC)를 명확히 설정하고, 이를 연도별로 평가하고 공개하는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감축성과가 없는 선언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셋째, 기후정의(Climate Justice)의 원칙이 반영되어야 합니다. 고소득 국가와 대기업이 탄소중립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개발도상국이나 저소득층이 더 큰 피해를 입어서는 안 됩니다. 따라서 재정 지원, 기술 이전, 지역 중심의 전환 프로그램 등 형평성과 연대의 요소가 반드시 포함되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탄소중립은 정부와 기업만의 과제가 아닙니다. 개인의 생활 방식 변화와 시민사회의 감시, 참여가 핵심 동력입니다. 소비자의 선택, 지역 사회의 실천, 학교와 미디어의 교육은 모두 탄소중립을 실현하는 중요한 축입니다.
맺으며: 허상이냐, 현실이냐는 우리의 선택에 달렸다
탄소중립, 즉 넷제로는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큰 과제이자 기회입니다. 그것이 허상이 될지, 현실이 될지는 선언 그 자체가 아니라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말이 아닌 실천, 기술 낙관이 아닌 구조 전환, 그리고 미래 세대에 대한 책임감 있는 결단입니다. 탄소중립은 허상이 아닙니다. 다만 그것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서는 용기와 협력, 그리고 진정성이 필요합니다. 이제는 질문을 바꿔야 할 때입니다.
“탄소중립은 가능한가?”가 아니라, “탄소중립을 위해 나는 오늘 무엇을 할 것인가?”
그 질문에 답하는 바로 그 순간, 우리는 허상에서 현실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